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FPS] 오버워치는 어떻게 팀플레이를 유도하는가?
    게임 분석/FPS, TPS 2023. 7. 10. 21:04

    오버워치는 어떻게 팀플레이를 유도하는가?

     
     

    오버워치에 몰살은 없다

     

    친구들과 오버워치를 하던 때였다. 나는 그랜드마스터. 친구 한 명은 언랭. 다른 한 명은 실버. 너무 실력차이가 심해서 같이 게임을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와 경쟁전을 돌릴 수 없을뿐더러, 일반전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이 계속 죽기만 할 것이 뻔했다.
     
    이에 우리는 사설방을 만들어 2:1 컨텐츠를 하기로 했다. 당연히 내가 1이고, 나머지 둘이 나를 상대하는 것으로. 나는 내가 가장 자신있는 트레이서를 골랐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친구들의 선택은 로드호그와 솔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언랭, 실버 친구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오버워치는 시스템적으로 팀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게 설계된 게임이구나.'
     
    어떤 점에서 그걸 느꼈을까? 바로 캐릭터 자체의 물리적인 한계치가 정해져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근거리에서 모든 탄창을 명중시킨다면 트레이서의 DPS(초당 데미지)도 240으로 아주 훌륭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호그를 때려 잡으려면 3탄창을 쏟아 부어야 한다. 게다가 로드호그가 '숨돌리기' 스킬로 체력을 회복하기라도 하면? 실버 솔져 친구에게 얻어맞지 않으면서 4탄창을 100% 명중시켜야만 했다. 제 아무리 실력차가 심하다 하더라도, 혼자서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리퍼가 캐리하려면 아군 로드호그에게 디바를 그랩해달라고 협력을 요청해야만 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버워치는 맥크리로 메모리 핵을 써서 초인적인 실력으로 헤드샷만 때려도 한 탄창에 적을 몰살시킬 수 없도록 설계된 게임이구나.'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맥크리의 총알 한 발은 70 데미지. 헤드샷을 맞추면 140 데미지. 그리고 한 탄창에 6발. 초인적인 실력으로 모든 공격을 헤드샷으로 적중시키더라도 고작 피 200짜리 기본 영웅을 3명만 죽일 수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런데, 오버워치에는 체력 200짜리 영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모두 머리만 맞춘다 하더라도 맥크리 혼자 힘으로는 로그호그 하나조차 죽이기 어렵다. 게다가 혹시 그 사이에 디바가 투사체를 막는 '매트릭스'를 킨다면? 그 사이에 윈스턴이 날아와서 방벽을 설치한다면? 그 사이에 아나가 생체 수류탄을 던져서 팀원에게 힐을 준다면?
     
    반면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FPS 게임에서는 우리팀 전원이 생존하고 상대팀은 한 명만 살아있는 상황에도 방심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상대가 권총 한 자루만 들고 있어도 말이다. 데저트 이글의 장탄수는 7발. 헤드샷 데미지는 212. 오버워치 맥크리와 마찬가지로 핵을 썼다고 가정하면 고작 데저트 이글 한 자루로도 한 탄창에 적군 5명을 몰살하고 남는다. 권총조차 이 정도인데, 라이플을 들고 있다면?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이론적으로 1:5가 가능하다

     
     
    또 '팀 게임'으로 유명한 리그오브레전드와 비교해도 오버워치는 팀플레이를 더 강하게 유도한다. 리그오브레전드는 라인전에서 상대를 압살한 뒤 비싼 아이템을 뽑아 압도적인 '스펙 차이'를 만들어 적팀 5명을 찍어누를 수라도 있지만, 오버워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면 유독 랭크 게임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오버워치가 팀원과 협동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여러 요소를 종합했을 때, 오버워치 개발진이 이런 시스템적 설계를 통해 실력 좋은 개인이 상대팀 전원을 몰살시키는 상황을 방지하고 최대한 협동 플레이를 유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쩌다가 이 끔찍한 혼종이 나오게 됐을까?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오버워치에도 몰살은 있다.

     
    그렇다면 그 프로들의 화려한 학살 장면과 유저들의 연속킬 POTG는 어떻게 뽑힐까? 오버워치 고수들은 알고 있겠지만 킬을 쓸어담는 POTG는 대체로 세 가지 상황에서 나온다. 

     

    연속킬이 창출되기 쉬운 세 가지 상황
    첫째: 이미 이긴 한타에서 적팀을 추격하며 하나씩 마무리하는 상황
    둘째: 플랭킹에 성공해 무방비인 적팀을 순식간에 여러 명 정리하는 상황
    셋째: 솔로 궁극기 혹은 궁극기 콤보 (자탄+펄스 / 나노+용검 등)

     
    이를 바꿔 말하면 양팀이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하는 대치 상황에서는 좀처럼 연속킬이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오버워치는 힐러들의 힐량이 매우 높을뿐더러, 탱커들이 팀원을 보호하거나 어그로를 분산시키는 스킬을 가지고 있고, 앞서 알아본 것처럼 딜러들의 DPS가 그 모든 상황을 뚫고 적팀을 몰살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대치 상황이 아니여야만 연속킬 POTG가 나올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위 세 상황이다.
     
    첫째 상황은 이미 적팀 중 누군가가 오버 포지션을 잡거나 우리 팀의 슈퍼 플레이 덕분에 짤린 탓에 이미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이다. 이런 경우 적팀은 후퇴하면서 대응 사격 정도만 할 것이고, 아군은 화력을 집중해 꼬리를 자르려 할 것이다. 이런 경우 딜러가 집중력을 발휘하면 무너진 균형 속에서 킬을 쓸어담는 장면이 나온다. 적팀은 힐이 부족하거나, 방벽이 없거나, 우리를 견제할만한 딜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상황은 사실 첫째 상황과 유사하다. 플랭킹에 성공해 무방비인 적군 한 명을 먼저 사살하고 나면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때 적팀은 이미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플랭킹한 딜러와 정면의 아군들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양각'에 노출되기까지 한다. 방벽으로 모든 곳을 커버할 수 없게 되며, 힐러는 포지션을 잃고 뒤로 다른 포지션으로 후퇴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힐러가 후퇴하지 않으면 힐러를 몰살한 뒤 나머지 적군을 몰살할 수 있고, 힐러가 후퇴하면 전장에 홀로 남겨진 적군 탱커와 딜러를 몰살할 수 있다.
     
     
     

    플랭킹에 성공해 킬을 쓸어담는 파인 선수

     
     
    셋째 상황은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대치 상황에서도 적을 몰살시킬 수 있는 수단인 '궁극기'를 활용한 경우다. 우리의 친구 맥크리를 다시 소환해보자. 에임핵으로 한 탄창을 쏟아도 고작 체력 200짜리 영웅 3명을 잡을 수 있던 우리의 맥크리가 궁극기를 풀차지한다면? 맥크리의 궁극기는 최대 7초까지 충전할 수 있으며, 첫 2초 동안은 데미지를 초당 130씩, 그 후부터는 초당 260씩 충전한 뒤 시야에 보이는 모든 적을 명중시킬 수 있다. 만약 적팀 5명이 엄청난 초보자여서 맥크리가 풀차지할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면 적팀은 데미지 1560이라는 죽창을 맞고 몰살당하게 된다.
     
     

    단순히 기본 공격을 지속했다면 적군 디바에게 견제당한 뒤 후퇴했겠지만, 궁극기 펄스 폭탄으로 확정킬에 성공하면서 적팀을 쓸어담는 데 성공한 새별비 선수

     
     
    하지만 팀플레이를 좋아하는 우리 오버워치 개발진들이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개발진이 팀의 도움이 있어야만 캐리할 수 있게 여러 궁극기에 제약을 걸어놓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맥크리는 궁극기 충전 시간동안 거북이 같은 이동속도로 걸어다녀야 하고, 첫 2초간은 데미지가 늦게 충전돼 적을 즉시 죽일 수 없다. 즉 시전 후 발사 전까지 적팀의 견제 스킬에 매우 취약해지는 것이다.

    적팀에 아나가 있으면 수면총으로 맥크리 궁극기를 무효화할 수 있고, 메이가 있으면 빙벽으로 맥크리 시야를 방해할 수 있고, 디바가 있으면 매트릭스에 총알이 먹힐 수 있다.
     
     

    아군 자리야는 맥크리가 궁극기 시전 시 CC기에 취약해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언제든 방벽을 씌워줄 준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경쟁전에서 한타를 이기고자 하는 팀원들은 개인플레이에 집중하기보다는 앞서 말한 세 가지 상황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협동 플레이를 위해 고민하고 소통하도록 유도된다.


     

    기본 DPS 부족으로 인해 파생되는 팀플레이의 강제 효과
    첫째 목적: 이미 이긴 한타에서 적팀을 추격하며 하나씩 마무리하는 상황
    -> 적팀 오버 포지션 적극적으로 브리핑하고 포커싱 콜하기
    둘째 목적: 플랭킹에 성공해 무방비인 적팀을 순식간에 여러 명 정리하는 상황
    -> 탱커가 어그로 분산을 통해 아군 딜러의 플랭킹 타이밍과 루트를 확보하고, 힐러가 플랭킹에 실패하고 도주하는 딜러 위치를 주시하며 제때 제때 케어하기(플랭킹 시도하는 딜러는 플랭킹을 할테니 어그로를 끌어달라, 힐러에게 케어 봐달라고 콜하기)
    셋째 목적: 솔로 궁극기 혹은 궁극기 콤보 (자탄+펄스 / 나노+용검 등)
    -> 아군 궁극기 충전 상황과 포지션 체크, 그리고 상대팀 궁극기 카운터 스킬 유무 체크 후 궁극기/스킬 사용 타이밍 콜 맞추기

     
     
     

     

    팀플레이의 강제가 오버워치의 정체성

     

    전통적인 궁극기 콤보인 펄스 폭탄+중력자탄

     
    즉, 오버워치는 각 영웅들의 DPS에 명확한 한계를 부여해 일반적인 대치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는 힘의 균형을 쉽사리 깰 수 없게 만들어 유저들이 협동을 위해 의사소통하도록 유도하고, 또 부족한 DPS를 극복해 전황을 한번에 뒤집을 수 있지만 여러 제약사항 때문에 팀원의 협력을 요구하는 궁극기를 영웅에게 줌으로써 궁극기 사이클이라는 '턴'마다 궁극기 콤보를 위해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팀원과 콜을 맞추도록 만든다.
     
    나는 이 '팀플레이의 강제'야말로 오버워치의 고유한 강점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둠피스트 사기 시절이나 위도우-한조-메르시 조합으로 '잘 쏘는 저격수' 한 명을 저지하지 못해 게임을 져야했던 메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억지 투 방벽 메타 시절). '이럴 거면 그냥 카운터 스트라이크, 발로란트 하지 왜 내가 굳이 정신없는 오버워치에서 레킹볼 둠피한테 스트레스 받으면서 맞도우 싸움을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지론은 제 아무리 위도우, 한조가 데이터 상으로 소외된다 하더라도, 그건 게임 컨셉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며 오버워치에서 저격수 포지션은 '한정적인 경우에만 잠깐 픽되는 존재로' 남아있어야만 이 게임에서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오버워치 개발진들은 저격수 생존력, 파괴력과 메르시를 동시에 버프하면서 대치 상황에서 확정킬을 내는 개인의 캐리력을 높이고 그들을 탱커가 쉽게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해지도록 게임을 바꿔놓았고, 나는 이로 인해 오버워치의 게임 정체성이 모호해졌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잘하는 위도우, 한조는 오직 더 잘하는 맞위도우, 맞한조로만 상대할 수 있게 되었고, 오버워치의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향후 팀플레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살린다면 나는 오버워치를 다시 재밌게 플레이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오버워치 연어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Copyright 2023. 준호의 게임 이야기. All rights reserved.